하루에 모듈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던 AI가 이제는 일정 단위의 업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. 돌아보면 2년 사이에 네 번쯤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고, 바뀔 때마다 제 자리도 같이 옮겨 갔네요.
1. 추천 함수의 시대 — 원시 코딩 IDE
처음 AI 코딩은 간단한 추천 함수였습니다. 코드를 치고 있으면 다음 몇 줄을 회색 글씨로 보여 주고, 탭을 누르면 받아 주는 정도. 일은 여전히 제가 했고, AI는 손이 조금 빨라지는 도구였습니다.
(그림 1: 첫 단계의 모습. 함수 이름과 첫 줄을 치면 다음 세 줄이 회색으로 뜨고, 탭을 누르면 받습니다.)2. 대화창의 시대 — 좋은 프롬프트로 작은 기능과 디버깅
두 번째는 좋은 프롬프트로 작은 기능을 만들고 디버깅을 맡기는 것이었습니다. 일하는 자리가 코딩 IDE 편집기에서 옆의 대화창으로 옮겨 갔습니다. 2024년 무렵까지는 "프롬프트를 잘 쓰는 사람"이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네요.
(그림 2: 두 번째 단계의 모습. 오류가 난 곳을 대화창에 설명하면 AI가 고칠 코드를 보여 주고, 저는 그걸 편집기에 넣습니다.)2025년 스택오버플로 개발자 설문을 보면 이 무렵 분위기가 그대로 나옵니다. 응답자 84%가 AI 도구를 쓰고 있거나 쓸 계획이었고, 현업 개발자 51%가 매일 썼습니다. 그런데 에이전트를 일에 쓰는 사람은 매일·매주·가끔을 다 합쳐도 열에 셋 정도였고, AI 답의 정확도를 믿지 않는다는 사람(46%)이 믿는다는 사람(33%)보다 많았습니다.
3. 하네스의 시대 — 스펙을 정의하고 제대로 가게 하는 것
세 번째는 올해 들어 스펙을 정의하고 개발이 제대로 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. 하네스가 정의되었고 그 환경이 구성되었습니다. 제 컴퓨터 화면은 시커먼 다중 터미널이 가득 채웠습니다. 터미널을 여러 개 띄운 건 여러 이슈를 동시에 처리했기 때문입니다. 하네스가 갖춰지면서 에이전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게 됐고, 그만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거든요.
(그림 3: 세 번째 단계 때 제 실제 화면. 왼쪽에 에이전트 목록이 있고, 창마다 다른 에이전트(코덱스, 클로드 코드, 오픈코드)가 각자 맡은 이슈를 처리합니다. 가운데 창에는 에이전트가 올린 작업 보고가 보입니다.)이 시기에는 AI가 얼마나 긴 일을 혼자 끝내는지가 빠르게 늘었습니다. AI 평가 기관 METR은 AI가 절반 확률로 끝내는 일의 길이(사람 기준 걸리는 시간)가 오랫동안 약 7개월마다 두 배가 됐고, 2024년 뒤로는 그 간격이 약 89일까지 짧아졌다고 올해 1월 발표했습니다. 모듈 하나가 버겁던 AI가 몇 시간짜리 일을 맡게 된 게 이 숫자입니다.
OpenAI도 2월에 "하네스 엔지니어링"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. 다섯 달 동안 사람이 손으로 쓴 소스 코드 없이 약 100만 줄짜리 제품을 에이전트로 만들었고, 엔지니어의 일이 코드를 구현하는 데서 에이전트가 일할 환경을 설계하는 쪽으로 옮겨 갔다는 내용입니다.
터미널로 코딩하는 이 모습은 제 책 하네스 엔지니어링 1장에 웹툰으로 넣었습니다. 1999년의 저를 찾아가 미래에는 GPU와 터미널로 코딩한다고 말해도 믿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. 그런데 2판을 쓰면서 그 옆에 괄호를 하나 달았습니다. 이것도 조만간 끝나갈 것 같다고요.
(그림 4: 하네스 엔지니어링 1장 웹툰. 미래의 내가 1999년의 나를 찾아가 "2026년에는 GPU로 코딩하고 인기 있는 코딩 도구는 터미널이야"라고 말하지만, 과거의 나는 농담하지 말라고 합니다.)4. 메신저의 시대 — 문서와 보고, 승인
그리고 마지막으로 10월부터 저는 메신저와 설계 문서, 보고, 승인을 보고 일정을 챙기게 되었습니다. 터미널은 뭔가 고장 났을 때 들어가서 보기 시작했고, SW 개발 업무에서 회사의 모든 업무로 넘어갔습니다.
(그림 5: 요즘 제가 보는 화면. AI 동료마다 이름표를 단 할 일이 달력에 올라옵니다.)
(그림 6: 문서에서 일하는 모습. 제가 문서에 메모 한 줄을 남기면 AI 동료가 근거를 달아 문서를 고치고, 그 메모 옆에 무엇을 바꿨는지 답을 남깁니다.)
(그림 7: 승인은 메신저에서. 민호가 정할 것 셋을 올리면 저는 "모두 a로" 한 줄로 답합니다.)AI 동료들이 메신저로 일을 받아 문서로 결과를 남기고, 저는 그 문서를 보고 승인합니다. 지금은 개발뿐 아니라 메일, 제안서, 교육 자료, 웹툰, 블로그까지 이 흐름으로 돌고 있습니다. 숫자로도 보입니다.
(그림 8: 넥스테인 IR 자료에 넣었던 그래프. 제품 저장소에 한 달에 새로 더한 코드가 2월 9.2만 줄에서 9월 25.4만 줄로 늘었습니다. 9월은 1~22일 집계입니다.)
(그림 9: 메모 한 줄에서 승인·기록까지. 지금 회사 일이 도는 흐름을 홈페이지에 네 칸으로 그린 그림입니다.)5. 정답이라고 내세웠던 것들
이 모든 게 2년 동안 일어난 큰 변화입니다. 작은 코드 조각 추천에서 이제는 AI를 팀원으로 두고 일하는 것까지 정말로 많이 바뀌었고, 그동안 이게 정답이라고 내세웠던 것들은 다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. 좋은 프롬프트가 정답이던 때가 있었고, 좋은 하네스가 정답이던 때가 있었는데, 지금은 그 둘 다 일의 한 부분이 됐네요.
6. 그래서 하고 있는 일
이 과정을 그대로 기록하고 상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.
- 하네스 엔지니어링 2판: 7월에 낸 1판에는 AI 코딩 에이전트와 일하며 부딪힌 것들을 담았습니다. 그 뒤 석 달 동안 회사 일을 여러 AI 모델과 동료로 하면서, 혼자 쓰던 하네스를 팀과 회사의 작업장(Naia ADK 2.0)으로 넓혔고 그 이야기를 2판으로 썼습니다. 공개 전에는 세 AI에게 원고 전체를 주고 칭찬 말고 정말 살 가치가 있는지 물었고, 지적마다 코드와 커밋을 다시 열어 확인하고 고쳤습니다. 2판은 곧 공개합니다. 1판: https://leanpub.com/naia-harness
- Naia AX: 이 일하는 방식을 기관·기업에 옮겨 드리는 AX 상품을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. "정해 둔 흐름을 돌리는 AX에서, 직무별 AI 동료와 일하는 AX로." 조직의 자료와 업무 기준을 모은 작업 공간(Naia ADK)을 먼저 만들고, 그 위에 직무별 AI 동료를 들입니다. 담당자가 문서에 메모 한 줄을 남기면 AI 동료가 근거를 달아 고치고 답하고, 담당자가 승인하면 기록으로 남아 다음 사람이 이어 받습니다. 위 네 번째 단계를 조직에 그대로 옮기는 셈이네요. 진단 → 갖추기 → 함께 운영 → 평가 → 스스로 운영, 다섯 단계로 함께 만들고, 기관·기업 클라우드 계정에 설치해서 쓰는 AI 회사를 바꿔도 체계는 그대로 남습니다. 지난달에는 국세청 AX교육 심화(기획) 과정 강의도 했고, 소상공인용 상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.
- Naia 제품과 통합: 회사에서 AI 동료와 일하려고 만든 바탕을 개인용 Naia에도 넣고 있습니다. 메신저로 일을 맡기고, 결과를 문서로 받고, 기억이 남는 구조가 회사용과 개인용에서 같아집니다.
넥스테인이 무엇을 하는지는 홈페이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.
- 넥스테인 홈페이지: https://nextain.io/ko
- Naia AX 소개: https://nextain.io/ko#ax
- AX 소개서: https://nextain.io/brochures/ax-20261030/index.html
- Naia 소개서: https://nextain.io/brochures/naia-20261030/index.html
7. 이 와중에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
2년 동안 제 자리는 편집기에서 대화창으로, 대화창에서 터미널로, 터미널에서 메신저로 옮겨 왔습니다. 저는 손으로 코딩하던 개발자인데, 요즘 더하는 제품 코드는 대부분 AI가 씁니다. 저는 코드를 한 줄씩 열어 보기보다 방향을 정하고 동작으로 확인합니다. 그렇게 만든 제품을 실제로 운용하고 있으니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서도, 정말 그런지는 지금도 조금 겁이 납니다.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저도 아직 모르겠네요. 이 와중에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.
나는 제대로 가치를 만들고 있는 걸까. 만드느라 혼자 고군분투한 기간이 맞았던 걸까. 이제는 그 검증마저 다시 AI에게 맡기고 위로와 확신을 AI로부터 받습니다. 다만 그 한계를 알기에 계속 의심하고 되짚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. 그리고 이제 막 제품을 내놓고 아직은 상업적 결과를 못 냈다 보니 더욱더 겁이 납니다.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변화를 잘 즐기고 계실까요? 아니면 저만 이렇게 자가 루프에 빠진 걸까요?
꽤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한 작은 조직의 대표 생활을 하다 보니 "승인해 주세요."의 무거움이 느껴집니다. 산출물의 책임은 온전히 아직은 사람의 것입니다.